가끔은 딴 얘기도 해 보자 - 아스피린의 귀환.

내 마음의 Honey | 2006/02/07 16:48

아스피린이 연재 재개됐다는 희소식을 주워듣고 (허걱, 그 게으른 작가가?!) 환희에 몸을 떨고 있다. 이대로 굿타임처럼 다시는 못 볼 역사 속에 스러지는 물건이 되나 했더니 이게 당최 웬 기적인가. 그간 부디 정신 좀 차렸길 바라마지 않는다. 근성을 보여 보라구! 부탁이니까!!


누군가 마음 줄 상대 없이는 파고들지를 못하는 S의 기질 상 아스피린에서 가장 귀애하는 사람(인지 뭔지)이라 하면 역시 해모수겠음. 허나 그냥 성질머리 개차반인 미인이었다면 나는 해모수에게 꺼벅 넘어가지 않았으리라.
문제는 이 남자가 내가 죽자사자 약한 코드를 무려 한꺼번에 네 개나 두름쳐서 꿰고 있다는 것이다.

1. '어둠 속에 뛰쳐든 빛' 혹은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준 사람'. 일명 임프린팅 코드.
2. 세상 모든 여자를 찝적대는 카사노바의 가면 뒤에 숨은 무시무시하고 절절한 순정.
3. 친우 관계의 패턴 3-b. 둔탱이 천연보케와 자기 마음을 속이고 겉으로는 갈구며 뒤로는 뭐든지 다 해주는 멍청이.
4. 아주 특별했던 상대의 아들 혹은 딸에 대한 간도 빼줄 듯한 초절 과보호.

포스트라이크-! 사진 아웃!!! (그런 거 없셈;)
오오 멋지다. 이렇게까지 내 취향을 저스트 스트라이크로 꿰뚫을 수 있다니.

내 애초에 아스피린을 봤을 때는 그저 호오 재미있는 만화가 있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눈이 즐겁고 마음도 즐거웠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적어도 6권까지는. 그리고 역시 별반 생각 없이 본 6권에서 뇌천에 벼락을 정통으로 맞았다....! (크윽)
이제까지 내 살아 생전 십만 명은 채우리라를 모토로 세상의 모든 여자를 집적대더니 글쎄 이 남자 정작 청순가련도 2000퍼센트 업그레이드의 처연한 얼굴로 온갖 죽빵 닭살스런 대사의 총공세를 퍼붓는 대상은 월하의 검무를 피로하는 친우더란 말이지이이이이이! (내 눈을 의심했다. 앞으로 설령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 너를 선택한 것을. 네게 선택받은 것을. ....어이어이, 정말 이래도 돼? ;;) 하백이 준 귀걸이가 와그작 깨져버리자 원인제공자인 영감을 당장 갈아마시고 회를 치겠다며 악귀의 형상으로 온갖 압박을 다 쌔우더니 결국엔 마치 '한바탕 신나게 뒹굴고 왔더니 그새 가족이 대륙 건너로 이사가 버린 사실을 알게 된 강아지' 마냥 더럽게 불쌍한 표정으로 풀이 팍삭 죽어버리는 대목에 이르러 나의 모에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것이다.
......졌다. 내가 졌다. 그래 인정하겠다. 난 저 빌어먹을 순정파 청룡에게 반했다!!!

(S가 보통 攻한텐 잘 반하지 않는데 하여간 '순정' 코드에는 진짜 별 수 없나 보다. 하긴 쯔바사에서도 초기엔 겐 상 러브로 출발한 걸 황제님의 지독한 순정에 져서 나중엔 황제님 쪽으로 훌렁 돌아섰었지 나;)

그리하야 이제까지 슬렁슬렁 보아넘겼던 1권부터 5권을 짐승의 마음(...)으로 단숨에 재독하고 꼴딱 죽어버렸다. 아아 그랬구나 이 만화 정말 '그쪽 방향으로도' 절라리 엄한 물건이었구나 내가 왜 이걸 여태 몰랐지 OTL 하백에 대한 회상은 모조리 사감이 한 300퍼센트쯤 섞여 있으며 친우만 얽히면 청순도가 정신없이 증가하는 해모수도 기절감이었지만 진실로 나를 빼도 박도 못할 청룡님 팬으로 만든 것은 안 그런 척 온달이에게 아주 대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그 남자였다. 내가 원래 좀 위에서 열거한 놈들 중에서 4번에 더허럽게 약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제르가 리나의 딸을 만나게 되는 팬픽 <푸르체리마>에 가히 미친듯이 열광했으며 모 쯔바사 사이트에서 나온 '쯔바사가 요절하고 아들 둘 중의 하나를 겐 상이 맡아서 키우는' 설정에 같이 캬아캬아하며 열렬하게 불탔고 반이를 충심으로 성심껏 보호하고 돌보고 잘 키워주는 보모; 피콜로 전 대마왕님에게 풀어지는 입가를 가눌 수 없었던 여자인 거라.
헌데 자세히 보면 해모수는 그 지랄맞은 성질머리엔 과분하리만치 - 표현방식이 엄청 거지같긴 하지만; - 온달이만은 진짜 죽.어.라.고. 돌봐주고 챙기고 절라게 과보호한다. 6권 외전에서도 살짝 나왔듯 문제가 좀 많은(...) 천련에게서 온달이 보호하려고 일일이 쫓아다니며 태클 건 것도 틀림없이 그였으며 하백이 날라버린 다음부터는 매년 생일 선물 꼬박꼬박 챙겨주고 (것도 아홉 살 때는 결계석, 열 살 때는 요정의 가루, 열 다섯 때는 마검 등등 아주 거한 놈으로만 주고 있음;) 자기가 밟혔으면; 밟혔지 대자에겐 손끝 하나 못 대게 하고 다른 놈이라면 벌써 반 토막을 냈을 사고를 쳐도 대충 눈감고 넘어가주고 무엇보다 저얼대로 손을 안 올린다. 그 성질에! 왕파리 두 마리 잡으려 임야 삼천평을 작살낸 그 성질에!!! 2권에서 발목에 칼 맞은 온달이를 답삭 안아들고 총총히 돌아설 때는 진짜로 코피 뿜었음. 이러고 보니 온달이도 무슨 일만 있으면 울며 불며 해모수부터 찾고 보며 허구헌날 갈구고 지랄하는 것 같지만 은근히 사이는 원만하다. 이런 대부대자 관계에 내가 꺼벅 죽는 줄 알면서 한 짓이냐 작가....? (피해망상)
그리고 이 강렬한 개싸가지와 뭣같은 성질머리의 남자가 안 어울리는 대부 노릇을 나름대로; 무지무지 성실하게 하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그 애가 '하백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대체 무어라 외쳐야 나의 이 불타는 심정을 세상에 다 토로할 수 있으랴. 안 그래도 이 남자가 백두산에서 기어나온 뒤의 모든 행동 원리의 기저에 깔려 있는 건 하백이다. 노예촌 여자라면 알러지를 일으키고 입으로는 뭔 개거품을 물어도 하백이 주워온 데이빗을 어쨌든 키우기는 하고 인간은 결코 죽이지 않고 몸이 죽어가는데 다 깨진 봉인구도 기 쓰고 빼지 않고 사방신 셋을 상대로 피터지는 싸움을 벌이고 (뭐 아무 일도 없어도 싸울 놈들이지만;) 미쳐 날뛰는 몬스터도 싹싹 잘 청소하며 메타트론이 인간 일에 깊이 관여한다고 나무랄 정도로 열심히 열심히 맡은 일 다 하고 있는 건 저어어어언부 하백 때문이 아닌가. 크흑 눈물난다! 오빠...! 눈물이 멎질 않아요!
(그래 오죽 절절하면 세상 사람들이 다 '쟤는 하백에게 묶였다' 라고 일치된 감상을 내릴까;)

자 이젠 '특별했던 상대의 아들 혹은 딸을 도맡아 키우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도 조금씩 풀려가는 와중에 아이는 자신을 열성껏 돌봐주는 멋지고 근사한 연상에게 사랑을 느껴 연하의 무모함과 담대함으로 돌격 프로포즈를 하고 때로 너무나도 닮은 아이의 얼굴에 겹쳐보이는 옛 상대의 환영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미안타 나는 너의 아빠 혹은 엄마를 잊지 못하게쿠나...' 의 순정만화 200퍼센트 시추에이션으로만 발전하면 아주 완벽...!! 쿨럭콜록커헉푸헉.


청룡의 남은 용생을 물 말아 싹싹 비벼 드신 문제의 옴므파탈(...) 하백은 이쪽 용어 한 마디로 깨끗하게 설명됨.
손오공 계열 얼티밋 카타스트로피.

어둠 속에서 썩어가고 있던 놈에게 손을 내밀어 강인하게 바깥으로 끌어내서 빛을 마구 뿌려줘가며 저 없으면 영 못 사는 몸으로 만들어놓고 (환생할 거 믿고 기다리겠대잖아... 풀 한 포기로 태어나도 난 알아볼 수 있을 거래잖아.... OTL) 입 싹 씻고 여자 하나 주워와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결국엔 초 태연히 훌훌 날아버리는 그 무자각의 천연 귀축 근성이 실로 미칠듯이 취향임. 어흑. 6권 외전에서 이제까지 잘 쌓아온 하백의 고고하고 우아한 이미지 - 그게 전부 해모수의 회상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참 할 말이 없다; - 가 한 방에 박살났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더라만 나는 6권부터 정신차리고 본데다 그 망가지는 방향조차도 그야말로 취향에 저스트 피트였던지라... (삐질) 나이를 몇을 먹고 애가 몇이어도 동심과 천진함을 결코 잃지 않는 영원한 소년, 영웅의 칭호를 자랑스러워하지도 버거워하지도 않는 무신경할 정도의 소박함, 정 많고 오지랖 넓지만 한편으로는 끝간데 없이 무심하며 맺고 끊고 만나고 헤어지는 데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는 마치 유유히 휘도는 바람같은 사람. ─이하 S의 사감이 섞인 캐릭터 분석이었습니다. 와우 진성 나쁜 남자다...! 얼티밋 카타스트로피다...! 너무 좋잖아...!!! (<-)
하여간 분위기 봐서는 초류향 손에 떨어진 것 같으니 - 해모수한테 소중한 게 세상에 하나밖에 더 있나; - 이대로 잡혀간 공주님 노릇이나 충실하게 하고 있으면 아주 좋을 듯함. 세뇌까지 당하면 완벽 히로인이겠소이다.


그러니까! 이번엔! 제발! 펑크도 잠적도! 하지 말고! 7권의 예고를! 충실히! 실행해! 보이란! 말이다!! 작가!!
(비나이다 비나이다, 저 작가에게 근성을 내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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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내 마음의 Honey | 2006/01/05 11:55

지나친 버닝은 심신을 황폐화시킵니다. -_-;;;
일도 바빠 죽겠는데 상대에게 자신이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사방팔방에 민폐 끼쳐가며 삽질해대는 못난 반편이 두 놈과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나 모르쇠나 굳힐 것이지 괜히 끼여들어 인생 잘잘이 조지고 있는 왕자님 때문에 휘떡 돌기 직전의 머리에게 잠시나마 안식을 주고자.



석문(石門)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는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 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 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千年)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수년 전에 모 팬픽에서 처음으로 이 시를 알고 피 토하며 부럭 죽어버렸음. 조지훈 시인, 당신은 정말이지 죽.어.라.고 나쁜 남자요 -_-;;; 지난 번의 나르키소스와 에코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시인이란 인류의 일부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척살하기 위해 뮤즈들이 내려보낸 킬러가 틀림없음(<-피해망상). 뭐 이렇게 역사에 남고 기억에 남고 가슴에 남아서 훌륭한 시고 위대한 시인이겠습니다만.

원래 여기 관리인이 좀 심하게 감상적이지만 이 시는 읽을 때마다 눈 속 깊은 곳이 저릿저릿한다. 훌훌 떨치고 가 버린 님을 향한 원망과 탄식에 지새우면서, 그럼에도 차마 그리움과 미련과 한 가닥 기대를 떨치지 못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첫날밤의 신부는 그예 발걸음을 돌린 님의 손 끝에 한 마디 말도 없이 한 줌 해로 화하고. 뭇사람이 조바심쳐도 굳게만 닫힌, 그러나 당신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활짝 열릴 그녀의 마음. 젠장 눈물나잖아. 로망이잖아. 생과부잖아. (이봐;)

..............

어... 어라? 뭔가 안식이 아니라 자방을 한 듯한 기분이...? ;;;;
(아예 지뢰를 밟아라 지뢰를 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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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소스와 에코.

내 마음의 Honey | 2005/12/26 16:48

Narcissus and Echo

             by Fred Chappell

Shall the water not remember  Ember
my hand's slow gesture, tracing above  of
its mirror my half-imaginary  airy
portrait? My only belonging  longing;
is my beauty, which I take  ache
away and then return, as love  of
teasing playfully the one being  unbeing.
whose gratitude I treasure  Is your
moves me. I live apart  heart
from myself, yet cannot  not
live apart. In the water's tone,  stone?
that brilliant silence, a flower  Hour,
whispers my name with such slight  light:
moment, it seems filament of air,  fare
the world becomes cloudswell.  well.


헛된 동경의 잔해. 비존재의 고통.
당신의 심장은 정녕 차디찬 돌이었나요.


(어허 좋은 시 망치지 마라;)

모처에서 보고 꼬르륵 죽어버렸음. 으어어어억 나 이런 거에 약하단 말이다아아아아아아아;;;;;
나르키소스가 뭐라뭐라 주절대는 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고 - 독해력이 딸린다고 비난하지 마아~라! ; - 에코의 탄식만 가슴을 푹푹 찌르는데 아주 환장할 지경이다. 그러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괜시리 매혹 커맨드만 발달해 남 신셀 쫄딱 말아먹는 사내쉐이들은 진작에 씨종내길 확 말려버려야 함. They should be illegal!!

(....그따구 망가진 남자들만 얼싸 좋다고 서방으로 모시고 사는 내가 할 말이냐고? 물론 아니지 으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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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월 1일.

내 마음의 Honey | 2005/12/01 22:28

S에게 기박한 팔자로 어필한 스즈켄의 두 번째 캐릭터 나루미 아유무 군 생일 축하합니다!
(그렇지만 나이 한 살 더 먹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아이였구나..... OTL)

이 아이에 대해서 풀고 싶은 썰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지금 머리가 심하게 복잡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미룹니다. 미안해, 하지만 정말로 사랑하고 있어! 키요타카요? 허허허, 그런 인간 모릅니다!

그리고 백합의 진수를 보여주신 아리스가와 쥬리 누님의 탄신일도 더불어 축하드립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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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UMU NARUMI.

내 마음의 Honey | 2005/11/04 17:50

S가 나루미 아유무에게 허걱하고 넘어간 건, 그야 기본으로 갖춘 미모라던가 팽팽 잘 돌아가는 머리라던가 형에게 품고 있는 초 복잡한 애증에 가까운 감정이라던가 하필이면 형수가 첫사랑이란 거라던가 그 잘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어찌나 치였는지 소심하고 자신감 없고 음울한 주제에 또 해야 할 때는 하고 불평은 한도 끝도 없이 주절주절 늘어놓으면서 남의 불행은 그냥 못 넘기는 냅둬도 오래는 못 살 성격이라던가 스즈켄의 또랑또랑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라던가 여러 가지로 많긴 하지만, 사전에 결말을 왕창 네타당하고 14권까지 본 후 비로소 확신했다.
나는 이 아이의 '자기 자신에 대한' 심상찮은 무심의 포스에 풍덩 빠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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